※ 주의
-본 글은 개발을 바라보는 한 역사사회학적 시각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충분한 비판의 여지가 있음
-국제개발협력 분야 조사 특성상 제3세계 친화적인 문법이 다소 포함되어 있음
-따라서 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특정 집단 등에 대한 지지적인 표현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목차 |
1. 개발의 국제적인 측면 2. 냉전과 개발프로젝트 3.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성 4. 제3세계의 농업 번외: 관련 영어 어휘 정리 |
1. 개발의 국제적인 측면
개발은 식민지 지배시기에 서구 열강들의 경제적인 이익 등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국가들을 원자재와 수출지의 장으로 이용한 ‘식민지 지배 분업 구도’의 형태로 나타났다. 식민지 지배 시기가 지나면서 여러 대항운동과 세계대전 등의 역사 속에서 점차 탈식민화가 진행되었고 국민국가로 독립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탈식민지 시대의 개발은 식민지 지배의 개발과는 달리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었으며 독립 국가들은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발전을 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개발은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하나의 정치적인 전략과 기획이었던 ‘프로젝트’로써 사용되었다. 이를 지칭해 194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를 ‘개발 프로젝트’시기라고 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 개발은 탈식민화 이후에 각 국가별 전략으로 사용되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책 『개발의 역설』에 따르면 신생 독립국가들은 개발 프로젝트에 기반을 둔 국제관계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는 과거 식민 지배 분업 구도의 산물로써 여전히 제1세계와 제3세계 국가 간에 교류가 이루어졌고, 독립한 국민국가들은 제1세계의 기술을 얻기 위한 대금을 원자재 수출 등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생 독립국가들은 유엔과 브레턴우즈 체제로 이루어진 틀을 통해 국제관계 속으로 통합되었다.
2. 냉전과 개발프로젝트
국제적인 틀 속에서 국민경제의 성장은 국제 경제 제도의 개발지원에 달렸으며 외국의 원조, 기술의 이전 등을 필요로 했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관계를 연상케 했는데 미국은 이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오른 미국은 유럽 등 서구를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으로써 ‘마셜플랜’을 시행한다. 그리고 이전의 시기인 1944년에는 세계 경제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국제은행체제가 브레턴우즈에 모인 44개의 재무부 장관들에 의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브레턴우즈 기구의 기능은 국제무역을 활성화시키고 제1세계의 기술을 제3세계가 수입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재정적 원조였다. 특히 세계은행은 차관을 제공해 각국이 댐 등의 국가기반건설을 하도록 했으며 대규모 환금 작물에 투자해 국제 분업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위와 같이 브레턴우즈 기구는 지역에 자금을 변통하고 개발 프로젝트의 기술을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제3세계 국가가 서구의 자본 집약적 성장 방식을 채택하도록 지도했다. 하지만 생산적 투자를 강조한 브레턴우즈 기구는 기구의 권한과 수혜적인 측면에서 제1세계에 편향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마셜플랜과 브레턴우즈 프로그램의 재정 지원과 같은 원조 속에는 공산주의를 배제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존재했다. 물론 이는 미국과 반대되는 이념을 가진 소련과 같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점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한반도지역이다. 한반도의 남북한은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 이후에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전략을 세워야 하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질서와 분단체제는 남북한이 서로 다른 산업화 전략을 가지도록 야기했다. 이때 이 산업화 전략은 1960년대 이후 남한은 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소련 등의 사회주의 진영의 원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은 미국의 안보적인 보호 아래에서 국가주도적인 발전전략을 통해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북한은 소련과 같은 국가의 무상원조나 차관을 이용한 원조를 통해 계획경제와 폐쇄경제체제 등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꾀해왔다(박종철,1996).
이는 냉전시기 당시의 이념경쟁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국민국가를 이룬 국가들의 산업화 전략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된 경제·군사 지원과 무역 같은 국제원조는 사실상 일정 지역에 집중되었는데, 미국의 경우는 한국과 이스라엘 등의 이념적 경쟁의 요충 지역에 집중해서 원조를 시행했다. 이는 단순히 국제원조가 서구의 기술과 제도 등을 전파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산권이 제3세계에 가하는 정치적 공세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존재했다. 즉, 국제원조는 개발 프로젝트의 보편주의와는 상반되게 국가 간에 차등적으로 이루어졌다.
식민 지배 시기 이후의 개발은 신생 독립국가들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서 성장과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로써의 개발을 의미하기도 했다. 개발 프로젝트는 미국이 식민지 지배 시기 이후 패권국가로 등장하면서 시행한 마셜플랜과 1944년에 만들어진 브레턴우즈 체제에 의한 원조 등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정치적인 목적 등에 의해서 각 국가 간에 차등이 존재했던 또 다른 불평등의 역사였다.
위와 같이 여전히 불평등한 국제적인 지원 속에서 국제정치에서 비중이 커진 제3세계 국가들은 반둥회의를 거쳐 ‘비동맹 운동’을 결성했고 제3세계 국가들이 차관개선 등의 요구를 하자 국제개발협회가 만들어져 저소득 국가에게 낮은 금리의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은 국제무역에서 발생한 과거 식민 지배의 불평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고 ‘유엔무역개발회의‘가 만들어진 뒤 제3세계 국가들의 의견을 담은 국제적 포럼인 G-77은 제3세계에서 생산한 공산품에 대한 시장 개방과 제1세계의 재정 자원의 흐름 확대 등을 요구했다.
3.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성
1960년대에 ‘신흥 공업국’들이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국가들은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 비해 성장률이 높았고 서구와 국제경제제도의 선별적인 지원 속에서 한 국가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지위도 상승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때의 전 세계 국외투자는 수출용 섬유와 전자산업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동안 원료공급지의 역할을 하던 제3세계가 세계시장에서 수출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식민지배 시기부터 이어져 온 국제 분업의 구도가 재편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선진 공업국의 내부적인 구조적 변동과 연관이 있다. 서진 공업국 내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결함을 통한 포드주의의 확산과 지속적인 기술혁신은 농업원료를 합성원료로 대체하는 등 농업기술의 근대화와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은 앞서 언급했듯이 국제 분업 구도를 변화 시켰는데 이후 70년대에 포드주의의 위기의 결과로 노동생산성의 둔화와 임금상승의 압박 등은 선진 공업국들의 노동집약적 생산 부문의 제3세계 국가들이 제조상품 수출을 가속화 시켰다(김호기,1991). 실제로 산업통계 분석시스템(INSTANT)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970년대에 약 19%의 비중을 차지한 제조업 비율이 이후로 갈수록 점차 증가해 1980년대에는 약 24%의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경제성장의 시점이긴 했어도 10년 이내에 5%P의 제조업 비중의 성장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국제 분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제3세계의 국가들 중 아르헨티나와 같은 농산물 등을 통해 수출전략을 펼쳤던 국가와는 대조적으로 제조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조건과 수출전략의 경제성장 방식을 취했던 한국과 대반과 같은 국가는 신흥공업국가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의 사례를 봤을 때 이러한 결과는 결코 세계경제나 선진공업국들의 내부적인 변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와 노동 등의 내재적인 발전조건의 영향도 존재했다. 실제로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대만은 토지개혁 등으로 자율성을 확보한 국가의 주도적인 경제성장 전략모델을 취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김호기,1990).
즉, 한국과 대만과 같은 신흥공업국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개발 프로젝트 시기의 경제성장은 세계경제의 변동에 따른 국제 분업 구도의 변화 속에서 각 국의 문화적인 조건이 상호작용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한국과 대만의 사례는 개발 프로젝트가 국제적인 측면과 국내적인 측면의 양면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러한 국제적인 상황에서 1970년대의 제3세계 국가의 산업화 수준은 모두 달랐고 최저 개발국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각되면서 개발 프로젝트의 보편주의가 훼손되기 시작되었으며 제1세계의 국가들은 제조업에서 지위를 잃고 농업 부문의 산업 비중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개발 프로젝트의 정치적 구조 내에서 제3세계는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에 의해서 유치산업을 보호받고, 제1세계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따른 농가보조금 정책으로 농업을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국제 분업 구도의 양상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4. 제3세계의 농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농산업화의 성공과 보조금 정책에 의해 농업 부문을 보호받았고 농산물을 과잉생산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로 인해 발생한 잉여 농산물을 제3세계의 국가로 보내 산업 노동자들이 먹을거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농산물 자원을 제3세계의 도신 산업 부문으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정부는 잉여 농산물의 처리를 위해 ‘공법 408호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지 통화를 통한 판매와 기근 구호용 농산물을 제공하며 잉여 농산물을 현지의 원자재와 물물 교환하는 등의 취지를 담고 있었다. 이 중 잉여 농산물의 저렴한 제공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이 상황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밀 수입은 당시 한국처럼 국가 주도의 개발정책을 시행한 국가에서는 수입된 밀의 배급에서 소위 ‘개발동맹’들에게 혜택을 주는 등 산업 투자 환경과 도시 인구를 지탱하는 데 도움을 얻었으며 더불어 신량 의존도를 높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이러한 식량 원조 대금으로 미국에게 지급된 현지통화인 ‘대충자금’은 미국 입장에서 인프라, 군사 목적의 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점차 늘어난 제3세계의 밀 수입의 증가는 소농 경작의 감소와 산업 노동력의 확대를 뜻했다. 이 역시 제1세계 농민들이 제3세계 산업 노동자 간의 국제 분업 구도였던 것이다. 이후 제3세계의 부유층은 식단의 근대화라고 불리는 동물 단백질의 식단으로 먹을거리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사료용 곡물의 공급과 수출이 늘어났는데 이는 환경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위의 내용과 더불어 제3세계의 농업은 ‘녹색혁명’에 의해 재형성되었다. 이는 식물 품종 개량용 농업 기술 ‘혁신 패키지’를 뜻하며 미국식 화학농업모델이 제3세계에 전파되는 경로임을 뜻한다. 개발의 핵심적인 사상인 생산주의 속에서 농업 또한 상업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고 석유농업이 이를 장려했다. 이에 따라 토지 증산력을 보존하는 농업 방식보다 다수확 품종을 통한 농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녹색혁명에 대한 사례는 자바 농촌의 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자바의 한 마을인 ‘꼴로종고’에서는 본래 이모작 형태의 농업이 행해졌지만 이후 다수확품종 도입 이후에 삼모작 방식으로 농업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업 부문의 임금이 증가하고 농업 노동자의 고용기회도 늘어났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또한 자바의 꼴로종고 마을의 농촌에서는 다수확 품종과 화학비료의 도입으로 인해 연간 수확량이 증가했다. 이와 같은 자바 농촌의 사례는 녹색혁명의 흔히 생각하는 개발의 성과와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꼴로종고 지역을 자바 농촌과 대비해서 살펴보면 여성들의 주 수입원이 상업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꼴로종고 지역의 벼농사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과 인접한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비농업 부문의 고용기회는 녹색혁명 이후 농지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없었다(김현중,1998).
하지만 이러한 자바 농촌의 환경이 아니라면 농촌가구에서 녹색혁명에 의한 성 불평등과 고소득 농가와 저소득 농가에 대한 지원의 차등에 따라 영세 농가와 무토지 농가는 고용기회의 불평등에 시달려야 한다. 또한 녹색혁명은 생화학비료를 사용에 따른 농토의 오염문제 등의 생태계 순환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한다.
한편, 개발 프로젝트 시기의 제3세계 국가들은 정치적지지 등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때 도시의 거주민들과 맺어지는 ‘개발동맹’이 중요했기에 제3세계 국가에서는 도시 편향적인 개발정책이 펼쳐졌다. 이러한 정책은 토지개혁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고 재농촌화가 이루어지면서 산림지역과 같은 국경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계획에서 남성 세대주들이 혜택을 받으며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소농들은 수출용 기업농에 밀려 농촌을 떠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개발 프로젝트 시기의 농촌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도시 편향성에 의한 개발이 생태적인 방식의 농업을 제거했고 농촌계층과 도시계층의 균형을 파괴해 슬럼현상 등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는 사실이다.
관련 어휘 정리
1.Bilateralism-양자주의. 일대일로라고 불린다.
2.Marshall plan-마셜플랜. 양자주의의 예시 중 하나로 미국이 향후 무역관계를 위해 유럽 과 일본 등의 패전국가에 대해 시행한 일종의 지원 계획이었다.
3.Multilateralism-다자주의.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관계이다.
4.Bretton woods system-브레턴우즈 시스템. 1944년 브레턴우즈에 모인 재무부 장관들은 국제은행체제로써 두 가지 기구 창설에 협의하면서 만들어진 체 제이다.
5.World bank-다자주의의 한 예시이자 브레턴우즈 시스템에서 탄생한 기구로 개발도상국 발전을 지원한 기구이다. 주로 개발 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다.
6.International monetary-국제통화기금. 전 세계의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환율 등을 조율하는 기능을 했다.
7.USSR:소련. 제3세계에 주로 사회주의 정책과 계획경제를 이용한 원조를 시행했다.
8.US:미국. 제3세계의 개발 도상국을 지원했는데 소련의 팽창을 막기위해 한국 등 전략적 요충지를 지원했다.
9.Selective aid:선별적 지원. 개발 프로젝트의 보편주의의 허상을 보여주는 단어이며 미국의 원조 방식이 예시이다.
10.Non-aligned movement:비동맹 운동. 개발프로젝트 시기의 제3세계 국가들의 대응 중 하나이며, 반둥에서 중국, 베트남 등의 국가가 모여 결성했다. 내정불간섭 원칙과 경제자립을 주장하며 서구의 개발의 정당성 에 의문을 던지며 좀 더 나은 경제적 지원을 제1세계에 요구했 다.
11.The group of 77:77그룹. 제3세계 국가들의 대응 중 하나이며 개발도상국 77개의 국가 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제1세계의 시장개방과 일차상품의 가격 안정화, 더 나은 국제원조 등을 요구했다.
12.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 77그룹의 요구를 토대로 나온 기구이며 제3세계의 관점을 UN에 도입하는 역할을 했다.
13.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신흥공업국(NICs).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은 국가였으나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해 빠른 경제적 성장과 발 전을 이룬 한국과 대만 등의 국가를 지칭한다. 미국 경 제모델과 근대화 이론의 성공정인 모델이지만 정치적 발 전이 경제적 발전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14.PL480:식량 원조 프로그램. 미국이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시행한 원조 프로그램 이다. 상업적 판매(Commercial sales), 기근의 인도적 지원(Famine relief), 현지 의 일차상품 원자재의 물물교환(Food bartered for law materials)를 목적으로 미 래의 소비국가에 대한 투자로 이루어졌다.
15.The green revolution:녹색혁명. 일종의 농업기술 향상에 대한 혁신을 말하며 질소산화 물, 화학비료, 살충제 등을 이용한 생산을 위한 농업방식을 전 세 계적으로 확산시켰다. 즉, 수출을 위한 상업적 농업(Industrial farming)을 확산시켰다.
참고자료
필립 맥마이클. 2013. <거대한 역설>. 조효제 옮김. 교양인
김호기,<국제분업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산업화-한국과 대만의 사례>,《한국 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51-55,1990
김호기,<국제 분업의 구조적 변동과 동아시아 신흥 공업국의 산업화:한국과 대만의 사례>,24(2):2001-2022,1990
김현중,<녹색 혁명 이후 자바 농촌의 변화-농업 노동시장과 농지 소유구조를 중심으로>,《농촌사회》8:218-245,1998
박종철,<남북한의 산업화전략-냉전과 체제경쟁의 정치경제, 1950년대~1960년대>,《한국정치학회보》29(3):223-247,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