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분석하는 방법론은 항상 객관적일까?
역사를 바라보는 수사와 표현, 그리고 관점은 그 자체로 "이성"과 "객관"을 보장하는가?
한국 특유의 "역사방법론"은 어떠한 사회구조적 영향에서 탄생되었는가?
역사방법론에서 레짐의 맥락은 필수불가결한가?
목차: 시작-이어령 일본분석방법론의 특징-이어령 일본분석방법론 비판-이어령 일본분석방법론의 의의 및 의미
시작: 역사분석의 두축
보통 어떠한 문화를 분석할 때는 역사 및 사회경제적 구조를 파악하는 거시적 관점과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 혹은 행태를 분석하는 미시적인 관점이 사용된다. 이때 “일본인은 왜 그런가?” 와 같은 일본문화 분석에는 여타 국가의 분석처럼 거시적인 관점이 주로 사용되고는 했다. 실제로 일본인의 행태를 분석하는 논문과 전문저서에는 “제국주의”, “대동아공영권,”버블경제“ 등의 역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행태가 부수적으로 분석되고는 했다.
2. 이어령 일본분석 방법론의 특이점
이때 이어령의 일본론은 “정치적인 관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책 제목의 “축소지향”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중요하다.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집단의 신념을 파헤지는 관점은 비교적 객관적인 상상력에 의해 일본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당시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시아와 서구 숭배방식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조사해보는 사고가 결여되어있음을 통박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즉, 이 책은 비정치성을 가지고 있는데, 정치성을 포함하는 화제로 유도하는 특이한 방식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을 일본문화의 비교기준으로 채택했다는 것이 ‘역사성’을 제공(by비평)
예를 들어, 일본만이 홀로 공업경제국으로 구미문화와 같은 대열에 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어령의 근원적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만”이라는 표현에는 일괄된 서양을 정의할 수 없는 모순이 내재한다. 이어령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괄호에 넣고(잠시 배제하고) 전후일본의 경제적번영을 축소지향이라는 현상 속 ‘국민성’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는 서양일원론, 일본불변론, 동양정체론에 기초한다. ‘특수성’의 정체를 충실히 설명해 보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론자들과 이어령의 공통점은 ‘서구’라는 현재를 비교항의 설정 등을 위해 기원 때로는 미래로 설정했으며, 전후 일본의 특수성을 ‘축소지향’, 즉, 전전 제국일본의 확장주의 반대편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3. 이어령 일본분석방법론 비판1
다만, 아마에가 한국에도 있다는 비판을 통해 이 책은 일본특수론 기반인 일본 대 서양이라는 일원주의적 비교법을 상당히 해체했지만 특수론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일본의 특성은 서양사람과의 차이점보다는 같은 동양인인 한국인이나 중국인과의 차이점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서양 대 일본인이라는 비교일본인론에 충격을 가하긴 했다. 일본의 특수성은 가장 가까운 한국과 비교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어령의 입론이다.
그런데 이는 동양 일괄주의를 상당 해체했기도 했지만 동양 전반에서 일본의 특수성을 재검토하는 것이 일본특수론의 풍부화에 기여하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어쨌든 그럼에도 이 책의 이어령의 분석은 일본특수론과 일본론 해체주의자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점이 있다.
4.이어령 일본분석방법론 비판2
이어령은 기존 일본 문화유형론 안에 한국이라는 문화적 접경지대를 매개변수로 이입시키고 문화접경의 문제를 본질적인 문제로 부각(‘식민지’에서의 성장-분석이 실감난 이유)시켰다. 이어령은 한국을 통해 일본을, 일본을 통해 한국을 조명한다는 접경의 사유를 근거로 두었다. 즉, 일본과 일본인론은 한국인의 관점과 문화풍속과의 비교를 통해 쓰여야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을 알아야 일본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이 뜻인데, 결국 이는 한국문화론 한일비교문화론으로 읽혀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어령의 분석은 문화유형주의의 고전적 규범을 깨지 못하고 다시 전형적인 문법으로 돌아왔다. 전후 일본을 폐쇄적이고 단일한 소우주로 파악하는 방법으로 복귀했다. 이어령이 말하는 일본론은 일본문화의 전시기를 포괄하는데도 정치적 레짐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았다. 일본이 작은 것을 지향한 것은 패전 후 비군사화의 체제 속에서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레짐의 맥락이 있다. 오히려 전전 일본에서도 거대화가 지향되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이를 빼 놓고 일본의 경제성장을 논할 수 있을까? (없다)
이어령의 논의에서도 서양은 탈역사적 전제로 기능한다. 동양일원론 비판은 서양일원론 구축인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은 일본을 하나의 특수성으로 엮여져 하나의 문화로 취급되는가이다.= 일본이라는 단위를 확정 시켜주는 위험을 시현(화법)
이 책은 본성론에 가까운 수사 운용을 일관한다. 즉, 식민지인이 식민지 기억을 통해 식민본국을 상대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태도, 비판적 파토스에 의한 특수성(조롱), 모든 논의가 이레코형 등 축소지향의 유형의 술어를 통해 발견되는 일상의 세부들에 연결되어있다.
이어령의 화법은 기호론적 분석이 될 수 없다.(가마에 표현) 국가의식과 민족민학 없이 일본문학양식의 대표가 된 하이쿠를 설명할 수 없고 군국주의 없이 일본공업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5. 이어령의 일본분석방법론에 내재된 수사표현의 의미.
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국민성을 가늠 하는 일이다. 결국 이 책은 일본인론을 통해 한국인론을 펼쳐 보이려는 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어령이 말한 책을 쓴 동기는 식민지의 경험 후기식민지인의 심리상태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와 한국을 알려야 한다는 당위의 결합이 이 책을 쓴 이유였을 것이다(잇슨보시가 일본적이라는 증거는 어린이에까지 알려져 있기 때문). 이레코 문화나 공원 문화의 미비는 축서지향보다는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도시화에 의한 주거문화에서 기인했을 것인데 이어령에게는 이러한 역사적 정황이나 인과관계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점은 이어령의 의도가 본성에 충실해 일본이 확대지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호소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문화적으로 봉인)
이어령은 정치 비판이 아니라 어릴 대의 공포 속에서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설화들은 한 국가가 특정시기 가진 목적과 삶의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을 통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이야기 속 대표성을 즉각 믿고, 민족의 근본적 본성을 도출해버린다. 즉, 식민지주의의 기억에 의해 한국인론과 일본인론은 대칭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은 일본의 경제와 문화를 설명할 때 한국이라는 비교항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촉구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어령이 책에서 쓴 대목을 보면(축소지향:435) 식민본국인에게 인정받겠다는 피식민자 특유의 열의와 보편주의 없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후기식민지인의 자기 증명과 강박관념에 기인한 한과 분노의 살풀이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상수를 통해 한국이라는 동양론의 종속변수를 알리기 위한 고민이었다. 일본의 제유를 앞세워 한국인을 증명하고 “타국의 피와 눈물로 쌓은 일본문화”라는 진심을 가능케 한다. 일본의 책임을 공박하는 이어령의 목소리는 활기차다. 이러한 강박관념과 한과 분노가 불온했던 지성을 계속 주류사회에 남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한국 안에는 분열 및 갈등이 있어서는 안됐다.
일본인은 정말 축소지향적인가?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데 있어 이어령은 전전일본과 전후일본이라는 약사적 단절을 설명하는 단서로 ‘중간표정론(노멘)’을 끌고온다. 이는 전쟁기의 호전성과 전후의 순종성이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를 이어주는 장치이다. 전전과 전후의 확대와 축소라는 두 지향을 잇고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은 결여가 있다. 전전과 전후라는 다른 차이를 일본인이라는 하나의 대상 속에 녹여 버리고 있는 것이다. 제도와 사회구조 등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는 사안들 앞에서 내내 축소지향에 집착한다. 전전과 전후의 일본이나 일본이 갖는 특질을 그 당대 안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로서의 전체를 의탁할 수 있는 하나의 기호 속에서 도출하려는 전도가 일어나는 순간- 격차의 전율과 전전 일본에 대한 역사적 두려움, 경험론이 빚은 방법이다.
일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은 함정이다. 트라우마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말한 일본인은 축소지향적인가라는 문제는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고진은 축소지향자체가 무한과 관련되어 있으며 거대지향이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고진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는 혁신적 관점과 그 안에 내재한 한국과 일본의 불행한 역사의 출현을 긍정한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일본을 통해 서구를 보고 있다고 지적하며 근대 일반의 특질을 일본의 특수성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근대의 공포스러운 경험에 의한 심리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결론: 이어령의 분석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만약 일본문화에 축소지향이 발견되면 이는 제국주의 일본의 거대지향이 패전 후 비군사화에 따라 축소지향이라는 전도된 형태로 결과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성과는 무관하다. 고진은 샷케이를 통해 축소지향과 확대지향의 동시성을 찾아낸다. 이는 도시상인문화와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축소지향의 관련이다.(다실-도시문화가 낳은 정치적 협의의 장소의 반영물) 이어령의 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가 기호,사물을 통해 세계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