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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크레이그 톰슨,2003) _ "알을 깨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qusdnwls 2024. 3. 24. 00:32

담요(크레이그 톰슨,2003) 독후감

:알을 깨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본 글은 이전에 학교 수업에서 작성된 글임을 밝힘. 책의 특성상 약간의 각색을 추가했음을 밝힘.

 

목차
시작하며: 나는 누구일까?
1. 성경과 크레이그
2. 레이나와 크레이그
3. 담요의 의미
끝맺으며: 알을 깨고 탄생한다는 것

 

시작하며: 나는 누구일까?

 

  요람부터 무덤까지가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 요람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을지에 대한 부모의 기대사항이라면 무덤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비석에 새겨진 글귀일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동안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나에게 있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항상 곤란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담요를 접하면서 크레이그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책 속의 인물과 상황들에 공감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에서 나의 정체성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

 

1. 성경과 크레이그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인 크레이그이다. 크레이그는 유년기에 기독교 주의자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이 때문인지 크레이그에게 있어서 교회와 성경은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였다. 크레이그의 삶에서 성경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크레이그의 따돌림 당하던 삶과 관련이 있다. 크레이그의 유년기는 따돌림의 연속이었다. 말이 따돌림이지 거의 극심한 학교폭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레이그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원했다. 그리고 꿈과 그림을 이러한 도피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지만 자신의 삶이 영원히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인 천국을 가기를 원했다. 따라서 크레이그의 삶에서 성경은 현실에서의 고통이 씻겨 없어지는 천국을 가기 위한 하나의 길이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크레이그의 천국을 가기 위해 성경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억압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가져왔다. ‘내가 누구인가?’,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어렵고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크레이그의 공통점은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교나 입시, 아르바이트와 진로고민 등에서 사람과 갈등하며 현실의 고통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레이그가 동생과 그림을 그리고 밖에서 놀았던 것처럼 나도 영화감상이나 운동, 산책 등을 하며 그 고통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크레이그가 느꼈던 것처럼 내 삶이 가치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결국 다시 현실의 고통을 맞이했을 때는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실패에 따른 무력감이 동시에 몰려와 피로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나에게 크레이그의 성경과 같은 것은 현실적인 어른들의 말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현실적인 사회의 요구였다. 이에 따라 튀지 않고 성실히 안전한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고 결국 도전과 꿈이 명확하지 않은 삶이 나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만들었다.

 

2. 레이나와 크레이그

 

  크레이그는 책에서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까지 성경 말씀을 따르고 구원받기 위해 자신의 삶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점은 책에서 크레이그가 성경캠프에서 다른 애들과 달리 성경을 읽고 방에서 몰래 빠져나오고 난 뒤 여자의 몸을 그린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청소년기의 크레이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려왔던 것이 세속적이고 헛되다고 생각하며 태움으로써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은 현실에서의 도피처였고 성경도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길이었다는 점에서 결국 크레이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 싫어했던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크레이그는 성경캠프에서 성경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진다. 그리고 레이나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청소년기에 첫 번째 사랑을 시작하고 레이나와 함께 성경캠프에서 예배를 빠지는 등의 일탈도 하게 된다.

  이후 레이나와 관계가 깊어지자 레이나의 집에서 2주간 시간을 보내게 된다. 2주간의 시간 속에서 크레이그는 레이나와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 벽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크레이그는 자신을 루가의 복음서에 나오는 하혈 병을 앓는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레이나를 예수와 같은 대상으로 여기며 레이나를 원하면 원할수록 마치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뒤 레이나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했을 때 옷을 갈아입는 크레이그와 이러한 행동과 대조되는 크레이그 머릿속의 성경구절은 크레이그가 억압된 자신의 모습을 벗어내는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나중에 크레이그는 레이나와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때 크레이그는 이전에 레이나의 편지를 읽고 자위행위를 했을 때와 다르게 죄책감과 자괴감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다.

  시간이 지나고 크레이그는 레이나와 헤어지게 되고 전도서의 구절에 의심을 품으며 성경을 멀리하고 새로운 세계인 도시로 떠나게 된다. , 레이나로 하여금 크레이그는 원치 않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크레이그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성경을 읽은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 항상 안전하고 현실적인 길을 선택해 왔다. 이러한 상태로 대학교에 오니 정말 혼란스러웠고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라며 부정한 생각들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부모님이 말씀하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무런 길이 정해지지 않은 채 대학교에 다니기 힘들어 결국 한 학기를 휴학했다.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화도 보고 못 보던 책도 보았다. 그리고 때로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쩌면 휴학은 크레이그가 그림을 태운 것처럼 나의 고통들을 잊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휴학을 하면서 학교에서 벗어나 있으니 마치 동굴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마치 우상의 동굴에서 말하듯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세상이 너무 거대함을 느꼈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휴학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미디어도 전공하고 싶고 IT와 사회학을 전공해서 공익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에서 만들어진 원치 않았던 나의 세계가 휴학 기간에 경험한 여러 것들에 의해서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사람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어렸을 때의 내가 다시 생각났다. 나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근거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니까였다.

 

3. 담요의 의미

 

  이 책에서 담요는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크레이그가 어렸을 때부터 쓰던 담요와 레이나가 만들어준 담요이다. 책에서 나오는 담요는 장난감으로써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매개가 되고 또, 단순하게 타인과 체온을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서 혼자서 덮는 담요는 그저 천 쪼가리에 불과할 뿐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내가 가장 많이 겪었던 현실의 고통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든 학교든 항상 적은 존재했고 그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고는 했다. 그리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오해에서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책에서 크레이그는 동생에게 먼저 침대로 초대해 담요를 덮어주고 서로 체온을 나누며 무서움과 쓸쓸함, 그리고 추위를 이겨냈고, 레이나가 크레이그를 자신이 만든 담요 속으로 초대하면서 서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저 생각에 잠기기만 했었다. 진짜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담요의 의미를 곱씹어보니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바래왔고 앞으로도 지향해야 할 나 자신은 남에게 먼저 담요를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게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끝맺으며: 알을 깨고 탄생한다는 것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알은 한 생명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다. 크레이그는 자신의 의도 하지 않았지만 부모와 주변의 환경으로 성경을 읽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이 결과로 크레이그는 고통이 없는 천국을 가기 위한 성경의 삶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던 입시 등의 고통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는 분명 알이라는 세계였을 것이다.

 

  크레이그가 레이나와 만나고 성장하면서 성경에 의문을 품고 믿음을 거두면 자신의 의지대로 도시로 떠나 자신의 삶을 찾아간 것은 알을 깨고 탄생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분명 고통스러운 노동을 요구한다. 당장 크레이그만 하더라도 레이나와 이별하고 성경에 의문을 품고 혼란을 느끼는 알을 깨기 위한 투쟁을 거쳤다. 나는 한번 휴학을 거친 뒤 여러 경험을 통해 미디어와 IT 그리고 사회학을 전공해, 누군가에게 따듯한 담요를 덮어줄 수 있는 공익을 위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정체성을 꿈꾸게 되었다. 이 정체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나 역시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관을 맞이하는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세계를 깨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담요는 크레이그라는 인물을 통해 나에게 알을 깨는 것이 가능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한치 앞도 모르는 불안감을 이겨내고 용기를 가져서 알을 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꿈꾼 정체성과 삶의 목표를 실현시킬 것이다.